책을 읽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가치관'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필터링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에도 필터링이 없었고,
받아들이는 내 감정에도 필터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말할 때도 필터링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 나와는 다른 행동, 실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할 때면, 그걸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저 사람은 틀렸고, 나와 결이 안 맞는 사람이구나' 라고 단정을 지어버리고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계산적으로 '가성비'만 따져가며 인간 관계를 형성하다 보니, 정작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숨김 없이 표현하는 게 '줏대' 있고, '소신'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솔직한 게 아니라 그냥 무례하고,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에서
양원근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한다.
"보통 우리는 '줏대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줏대라는 것이 종종 나의 편협한 생각으로 남을 상처 주기도 하고, 내 옳음에 갇혀 나 자신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나의 뚜렷한 소신이나 주장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세상 모두에게 객관적 기준이 된다 거나 옳음이 되리라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대부분의 싸움을 보면 모두 '나의 옳음'으로부터 시작되어 '너의 틀림'으로 끝난다. 그런데 정말 이 세상에 절대적 옳음과 절대적 틀림이라는 게 있을까."
-226P.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싶다
지금까지 나의 '솔직함'이라는 객기와 오만함, 편협한 생각으로 상처 받거나, 힘들었을 이들을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고 반성하게 됐다.
"사람의 관계에서 가성비만 추구하다 보면 나중엔 껍데기로 포장된 관계만 남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다스리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적당히 허락해주며, 외롭지 않을 정도의 소중한 관계들을 꾸준히 쌓아나가는 것은 '사회적 동물'이 당연히 가져야 할 활동이다. 건강한 세상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기꺼이 서로의 행복을 응원해주는 세상,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서슴없이 주고받는 세상이 아닐까. (중략) 알맹이가 꽉 찬 관계는 가성비를 넘어서는 귀한 가치를 우리의 삶에 선물해준다."
-223P.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싶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성비'라는 단어 자체를 쓰는 게 옳은 걸까?
만약 동시에 사람을 만나는 데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면 나는 나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날 것 이다.
물론 공적으로의 만남이라면 다르겠지만 '가성비'라는 단어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은 몇 번을 만나도 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담 이쯤 나에게 질문 하게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금이나마 귀한 가치를 느끼게 하고 있나?